인류 먹일 미래 물고기는 땅에서 자란다

2023-06-02 11:18:21 게재

재순환양식시스템, 환경오염 줄이고 어디서나 양식 가능 … 영국 이코노미스트 "관건은 비용"

북극권에 속하는 노르웨이 북부는 울퉁불퉁 지형에 쌀쌀한 기후를 갖고 있는 해안지역이다. 전형적인 농작물 재배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스키에르스타드 피오르드 해안의 막다른 길 아래엔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농장 중 하나인 '살텐 스몰트'가 있다. 여기에서는 농작물이나 가축류가 아닌 물고기를 생산한다. 7000㎡ 규모의 본관 건물 안에는 매년 어린 대서양 연어인 스몰트 800만마리를 생산할 수 있는 수조가 있다.

1일(현지시각)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어류 양식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식량 생산 형태다. 해산물은 전세계 단백질 섭취량의 약 17%를 차지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50%에 육박하기도 한다. 부유한 국가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구와 소득 증가에 힘입어 전세계 생선 소비량이 2020년 1억5800만톤에서 2020년대 말 1억8000만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르웨이 살텐 스몰트의 '재순환양식시스템'(RAS) 연어 양식장. 사진출처:퓨어새몬테크놀로지


하지만 향후 바다가 주는 혜택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전세계 어장의 90%가 전량 어획되거나 남획되면서 개체수가 줄고 있다. 때문에 1990년 이후 어류 소비증가 대부분을 양식업이 책임졌다. 앞으로의 성장도 거의 대부분 양식업이 제공해야 할 전망이다.

하지만 육상 가축사육과 마찬가지로 양식업은 환경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많은 양식 어류는 강이나 바다의 그물망 가두리에서 자란다. 물고기가 먹다 남긴 사료와 물고기 배설물은 주변 해역을 오염시킨다. 그물망이 파손돼 탈출한 양식 어류는 지역 생태계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내륙의 '유동식' 양식장은 강이나 우물에서 담수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하기에 담수를 마시는 인간들과 경쟁하게 된다. 물고기를 사람 가까이에서 키우면 바다에서 유입되는 질병과 기생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물고기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항생제 및 기타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한다.

살텐 스몰트와 같은 새로운 양식장이 해결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러한 종류의 문제다. 이 양식장은 '재순환 양식 시스템'(recirculating aquaculture systems, RAS)이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RAS 시스템은 기존 어류양식장처럼 끝없이 흐르는 자연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물을 지속적으로 세척하고 재활용하는 수조를 이용한다. 여기엔 세가지 큰 이점이 있다. 표준 양식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RAS 양식장의 물 사용량이 훨씬 적다. 또 물고기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 양식에 까다로운 어종도 전세계 어디에서나 키울 수 있다.

사실 RAS 양식장은 가정용 수족관의 대형 버전이다. 각 양식장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수조, 물고기가 배출하는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수질정화 장치로 구성된다. 여기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은 하수처리산업에서 활용되는 것들이다.

감량과 재사용 및 재활용

물고기 배설물이나 물고기가 남긴 사료 등 불필요한 고형물을 먼저 제거한다. 이 과정은 원뿔형 탱크와 중력, 촘촘한 메시 필터를 사용해 기계적으로 이뤄진다. 남은 폐기물 대부분은 암모니아다. 물고기는 아가미를 통해 신진대사 부산물인 암모니아를 분비하는데, 이게 너무 많으면 독성을 띤다. 따라서 암모니아가 함유된 물에 충분한 산소를 주입하면 박테리아 군집이 암모니아를 아질산염과 질산염으로 전환한다. 추가 단계를 통해 인(P) 등 중금속과 같은 다른 오염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

물이 깨끗해질수록 더 많은 물을 재순환할 수 있고 외부에서 끌어오는 물의 양이 줄어든다. 물을 100% 재활용하는 시스템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살텐 스몰트와 같은 최첨단 시스템을 사용하면 물 사용량을 99%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연어 양식은 생산량 1㎏당 약 5만리터의 물을 소비한다. 반면 RAS 시스템은 150리터만 필요하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인근 RAS 새우 양식장 '트랜스페어런트씨'(TransparentSea)의 설립자 스티브 서튼은 "중요한 점은 RAS 양식장이 야생환경을 그대로 둔다는 점이다. 따라서 양식 어류가 병원균을 퍼뜨리거나 수로를 오염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폐기물을 한곳에 집중하면 나름의 장점이 있다. 노르웨이의 또 다른 양식 회사인 '노피테크'의 연구책임자 카리 아트라마달은 "일반 양식장에서 놓치는 가장 큰 기회 중 하나는 양식장에서 자연환경으로 배출되는 폐기물에 귀중한 영양분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질산염은 수경재배 작물의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살텐 스몰트의 생산관리자인 존 샐레브란트는 "물고기가 남긴 사료뿐 아니라 물고기 배설물도 회수하고 건조해 농업용 비료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인공수조에서 물고기를 키우려면 전체 시스템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한번 오류가 나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아트라마달 책임자는 "산소공급 시스템이 고장나면 8분 이내 물고기가 죽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RAS 시스템은 세심한 모니터링을 통해 물고기를 키우는 환경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RAS 시스템은 육상의 정밀농업과 비견되는 수중 버전이다.

예를 들어 연어는 차가운 물을 선호한다. 기후제어 수조는 해류와 조수, 날씨에 상관없이 늘 이상적인 온도를 제공할 수 있어 물고기의 성장속도를 높일 수 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위치한 스타트업 '릴데이터'는 RAS 수조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의 데이터를 사용해 물고기가 얼마나 배고픈지,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 심지어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는지 추정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이같은 기술로 양식장 생산성을 최대 20%까지 높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

또 RAS 시스템은 자연환경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어디든 구축할 수 있다. 또 다른 노르웨이 회사인 '애틀랜틱 사파이어'는 연어의 자연서식 범위에서 남쪽으로 1000마일 떨어진 미국 마이애미 근처에 대서양 연어 양식장을 건설했다. 대도시와 가까우면 연어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줄어든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본사를 둔 연어 생산업체 '퓨어 새몬 테크놀로지'는 일본에 RAS 양식장을 건설했다. 운송비용을 낮추면서 연어 1kg당 탄소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게 이 회사의 예상이다.

모든 신기술이 그렇듯 초기에는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2021년 플로리다에 위치한 애틀랜틱 사파이어의 공장에 설치한 RAS 시스템 여과장치에 문제가 생겼다. 전체 물고기의 약 5%에 해당하는 50만마리의 물고기가 폐사했다. 이 회사는 이 사건을 두고 "RAS가 급속히 발전하는 초기단계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

가장 큰 단점은 비용이다. 각종 파이프와 펌프 및 모니터링 시스템 등 RAS 양식장에 들어가는 자본은 표준 양식장보다 훨씬 많다. 기존의 많은 RAS 시스템이 비교적 비싸게 팔리는 어종인 연어 양식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에서도 연어 양식장의 절반 정도가 RAS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연어의 생애주기 첫단계에 국한된 것이다. 어린 연어를 성어로 키우려면 여전히 일반 야외수조가 필요하다.

양식시장 분석회사인 '스페릭 리서치'의 매트 크레이즈는 노르웨이의 세제혜택이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 일부 기업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다. 고가의 폐기물 관리장치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전체 물 사용량을 크게 줄이는 방법이다. 한편 규모의 경제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크레이즈는 소규모 RAS 양식장의 물고기 생산단가는 일반 양식장 대비 2배 많지만, 대규모 양식장의 경우 일반 양식장에 맞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RAS 시스템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네덜란드 비영리단체인 '양식관리위원회' 연구책임자인 캐서린 스타인버그는 "전체 양식장 중 5% 미만이 RAS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며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생선에 대한 수요가 끝없이 증가함에 따라 그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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