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3대 의제 - 2 정치개혁

필리버스터 열풍이 보여준 ‘정치 갈증’

박홍두·고영득 기자

혐오·무관심했던 시민들 “그래도 정치에 답 있다”

총선 앞두고 인터넷·SNS ‘생활정치 실험’ 이어져

“정치가 싫었다. 하지만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많은 시민들이 최근 정부·여당이 추진했던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야당들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지켜본 뒤 내놓은 반응이다. 자신들 삶을 보살펴주지 못하는 정치를 ‘혐오’해왔지만, 결국 문제를 풀 해답도 정치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였다는 것이다.

지난달 23일부터 172시간 동안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진 필리버스터에 시민들은 열광했다.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4000여명의 시민들이 본회의장을 찾았다. 그리고 ‘금배지를 단 그들만의 얘기’였던 정치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정부·여당이 제출한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야 3당의 엿새째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시민들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정부·여당이 제출한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야 3당의 엿새째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회사원 이윤정씨(37)는 당시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본회의장을 방청하며 ‘필리버스터 열풍’에 동참했다. 이씨는 “만날 싸움박질만 한다고 믿었던 국회였는데, 처음 들어와서 필리버스터를 구경해보니 이게 정치인가 싶었다”며 “그냥 싸우는 게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싸우는 게 정치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류충열씨(51)는 “결과는 패배였지만, 과정이 정말 아름다웠다. 국회가, 정치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류씨는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시청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테러방지법도 알게 되고 그 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필리버스터에서 나타난 뜨거운 관심은 시민들이 처한 현실과 삶의 어려움에 대한 외침이기도 하다는 분석이 많다. 주부 김지윤씨(45)는 “내 삶과 전혀 상관없던 게 정치였는데, 뭔가 속이 시원했고, 뜨거운 감정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며 “테러방지법뿐 아니라 우리 민생도 정치권이 그렇게 풀어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필리버스터 ‘여운’이 정치적 행동으로 발현될지도 주목된다. 한 번도 투표장에 가본 적이 없다는 취업준비생 박예진씨(24)는 “이번 4월엔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박씨는 “시민들까지 릴레이 필리버스터를 하는 걸 보고 아무것도 못하는 내 자신이 미웠다. 취업이 우선이었고 정치에는 무관심했었는데, 이번엔 꼭 투표하겠다”고 다짐했다.

필리버스터 열풍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욕구도 총선을 앞두고 확대되는 모습이다. 정치를 생활 속에서 찾아서 스스로 활동에 나서는 ‘생활정치 실험’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주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활발하다. 프로젝트 그룹 ‘청춘C:8A’에 모인 청년들은 ‘이런 사람 뽑지 마라, 진짜’라는 2분30초짜리 동영상 한 편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영상은 4·13 총선에서 뽑지 말아야 할 기성세대 후보들을 지목하는 내용으로 공감대를 얻으면서 조회수만 91만회에 달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영상 작업을 통해 청년 문제 등을 이슈화하는 데 나서고 있다. 지난해 8월 설립된 정치벤처 ‘와글’도 SNS를 통해 시민정치 실험에 나서는 비슷한 경우다.

지난해 12월 시민사회단체와 일반 시민 참여로 발족한 ‘시민혁명당’도 정치 플랫폼 ‘움직여’ 사이트를 열었다. 이를 통해 정치와 괴리돼 있던 시민들 의견을 다양한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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