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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보도 원칙 스스로 깨버린 정부

유신모 기자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이 한국으로 오는 과정이나 이들의 신원과 관계된 것은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언론이 인권단체 등을 통해 취재한 탈북 관련 내용도 정부가 적극 나서서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탈북자의 사생활·인권,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고려하고 관련국과의 외교적 마찰, 탈북 루트 차단 등을 막기 위한 것이다. 언론도 그래야만 더 많은 탈북자들이 안전하게 한국으로 올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의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이고 상세한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기자메모]탈북자 보도 원칙 스스로 깨버린 정부

지난 8일 정부가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13명 집단탈출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것은 이 같은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탈출 동기, 시점, 심지어 사진까지 언론에 제공했다. 오랜만의 집단탈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와 정부의 독자 제재 상황에서’ 해외체류 북한 주민이 집단 탈출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0일에는 이례적으로 통일부와 외교부가 동시에 대북 제재 효과에 대한 브리핑을 자청함으로써 이번 탈출 사건이 대북 제재의 효과 때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결국 정부가 하고 싶은 말은 “박근혜 대통령 주도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총선을 의식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제는 이런 유치한 언론플레이가 작동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외 북한식당이 제재 이전부터 운영난을 겪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재 때문이라는 근거도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해외 북한식당이 모두 문을 닫는다 해도 이렇게 북한이 곧 망할 것처럼 흥분할 일은 아니다.

정부가 탈북 관련 보도원칙을 스스로 깨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탈북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정부 당국자는 “사안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공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앞으로 탈북 관련 사안에 대해 신변안전, 외교마찰 운운하며 언론에 비보도 요청을 하는 염치없는 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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