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개 제품 표시기준 준수 안 해…글씨도 ‘깨알’ 소비자들 읽기도 힘들어

이혜리·이혜인·김기범 기자

소시모·취재팀, 섬유유연제 등 108개 제품 조사해보니

[독한 사회-생활화학제품의 역습]61개 제품 표시기준 준수 안 해…글씨도 ‘깨알’ 소비자들 읽기도 힘들어

현재 시장에 유통되는 생활화학제품 중 KC마크나 자가검사표시, 표준사용량, 제조 연월일 등을 모두 기재한 제품은 절반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정부가 생활화학제품 15종을 위해우려제품으로 지정하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 제품에 유해성분을 ‘표시’해야 하는 기준도 강화했지만, 여전히 겉돌거나 거북이걸음이었다. 전체 성분을 공개하지 않는 사이 과장 광고만 늘어 소비자들은 정확한 제품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경향신문 ‘독한 사회-생활화학제품의 역습’ 취재팀이 소비자단체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과 함께 지난 6월29일부터 7월5일까지 서울시내 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 등 3곳에서 섬유유연제·탈취제·방충제 등 3개 품목 총 108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61개 제품(56.5%)이 KC마크나 자가검사표시·표준사용량·제조 연월일 등 기재해야만 하는 표시기준을 1가지 이상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해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에서 생활화학제품 15종의 표시기준을 강화했다. 그러나 화평법의 적용을 받는 제품들도 직접 살펴보니 성분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충제 10개 중 5개는 성분 표시에 ‘겨자추출물’이라고만 되어 있고, 다른 성분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성분을 표시하는 칸이 사실상 ‘기능’을 표시하는 칸으로 변질된 모습도 보였다.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한 냉장고용 탈취제의 성분 표시에는 ‘탈취제, 식물성 소취제, 겔화제, 방부제, 용제’라고 쓰여 있었다. ‘정전기방지제’ ‘안정화제’ ‘동결방지제’ ‘산도조절제’ ‘살균제’ 식으로만 표기된 제품도 많았다. 애초에 정부가 강화된 표시기준을 만들 때 전체 성분을 표시하지 않는 대신 ‘첨가 이유’를 기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제도의 효용성이 떨어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유해성 논란이 있는 계면활성제와 향료는 정확한 성분 명칭을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탈취제·방충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분이 잘 기재돼 있는 섬유유연제 제품도 계면활성제는 ‘제4급 암모늄염계’ ‘지방산계’ 식으로 계열만 적혀 있었다. 계면활성제 함량도 5% 미만, 5% 이상~15% 미만, 15% 이상~30% 미만, 30% 이상의 4가지 분류만 되어 있어 구체적인 성분 물질이나 함량은 알 수가 없다.

전체 108개 제품 중 표준사용량을 기재한 제품은 59개(54.6%)뿐이었다. 위해우려제품 15종의 표시기준에서 표준사용량은 표백제·합성세제·섬유유연제만 반드시 표시하도록 하고, 나머지 품목은 기업 의사에 맡겼기 때문이다. 표준사용량을 기재한 제품 59개 중 섬유유연제는 48개였다. 방충제는 10개 중 8개, 탈취제는 50개 중 3개만 기재했다. 전체 조사 대상 중 10개 제품은 외관상으로 제조 연월일을 확인할 수 없었고, 탈취제 1개는 ‘2016년 11월9일’이라고 잘못 표기돼 있었다. 한 방충제는 KC마크와 자가검사표시 모두 기재돼 있지 않았다.

강화된 표시기준에서는 소비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글씨 색깔을 바탕색과 구별되는 색깔로 하도록 하고, 글씨 크기도 8포인트 이상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깨알같이 적어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제품도 보였다. 투명한 용기에 흰색 글씨를 사용해 읽기 힘든 제품도 다수 있었다.

생활화학제품의 유해성 우려가 커지면서 생활화학제품 광고도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해성 논란이 있지만 성분 표시는 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 ‘향료’와 ‘살균’과 관련된 것이 과장 광고 시비를 자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먹을 수 있는 식초 성분 함유로 뽀송뽀송하게” “유러피언 퍼퓸으로 깊고 풍부한 향이 오래오래” “꽃 식초 살균으로 꿉꿉함 없이 상쾌하게, 항균 99.9%” 식이다. 이런 광고 내용이 실제 제품에 반영돼 있는지 제3자는 성분 표시가 없어 알 길이 없다. 향료에도 방부제 처리가 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 지적도 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천연, 자연, 식물성, 저자극이라는 표시는 자칫 소비자로 하여금 화학물질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오인하게 할 수 있다”며 “소비자 혼란을 야기시키는 표시광고 문구에 대한 모니터링 및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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