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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980년대 부산 아동자선병원 아시는분
비공개 조회수 594 작성일2021.05.17
1980년대에 
부산에 서구 암남동에 있던 아동자선병원 혹은 아동병원이라는 
병원 아시는분 계신가요?
해당 병원관련해서 자료찾고있는데 어떤 병원이였는지 가르쳐주세요
고아원 및 불우한 사람들한테 무료로 진료하던 병원으로 알고있는데 좀 자세히 알수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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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남동 아동자선 병원이란

6.25 전쟁기 부산에 설립된 의료 기관으로 아동자선병원(Pusan Children's Charity Hospital)이 있었다. 아동병원은 부산에만 있는 자선 병원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제2병참기지 사령부 소속으로 부산에 체류하던 메컨 대위가 1950년 가을 전재(戰災)고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부산 서구 아미동의 국립행복산육아원 구내에 의무실을 열었는데 이것이 후일 부산 자선병원으로 발전했다. 의무실은 얼마 후 부산 메소닉클럽의 후원으로 소아과 의원으로 발전했는데 이것이 앞서 소개한 바 있는 ‘부산무료소아과의원’이었다. 이 때의 원장이 내과 전문의 정구현 의사였다. 그러다가 1952년 1월 부산시와 경상남도 사회사업 연합회, 그리고 메소닉 클럽과 일반 유지 대표로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부산아동자선병원으로 개칭하고 부산시 소유 건물인 완월동으로 이전하였다.

1953년 5월에는 사단법인을 구성하였는데 이 당시 장기려 박사가 중심이 되었고, 그는 발기 취지문이 남아 있다. 1955년 8월에는 메소닉 클럽 주관으로 ‘미군대한원조’(AFAK: Armed Forces Assistance to Korea)의 건축자재 제공과 기독교세계봉사회(CWS: Church World Service)의 원조로 부산대학교 병원 구내에 100병상 규모로 건물을 짓고 이곳에서 진료했다. 주된 환자가 고아원에 수용되어 있는 아동들이나 일반 고아들과 극빈 아동들이었다. 이곳 부산아동자선병원을 위해 영국의 아동구호제단인 SCF(Save the Children Fund)은 매달 200파운드를 지원하여 주었다. SCF는 1919년 창설된 구호단체인데, 한국에서는 1953년부터 활동했고, 아동자선병원 외에도 여러 고아원을 후원하고 빈곤아동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1960년에는 송윤규(宋允奎, 1918-?) 의사가 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한국의 초기 신학자인 송창근 박사의 장남인데, 함경북도 웅기에서 출생했다. 1944년 대구의전을 졸업하고 흥남질소비료공장 부속병원 소아과(1944), 용산철조병원(1951), 유엔규 야전병원(1951), 영연방아동구호재단 진료실(1953)에서 일하고 1955년 미국으로 가 4년간 내과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후 1960년부터 부산아동자선병원장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1966년에는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 초 아동자선병원의 현황을 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는데, 1963년 11월 1일 당시 미국 메노나이트교회 중앙위원회(MCC)에 보고된 자료이다.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요원으로 한국에서 일했던 마벨 브랑크(Mabel Brunk)가 작성한 이 문서에 보면 병원 주소는 부산대학교 병원 구내인 아미동 2가 10번지였고, 원장은 송윤규 박사였다. 입원환자는 60-65명 정도이고 외래환자는 일일평균 50여명이었다고 한다. 직원은 총 62명인데, 종교별로 보면, 천주교인이 10명, 개신교 신자가 24명, 나머지는 비종교인이었다고 한다. 부산아동자선병원은 설립된 이후 1968년까지 어린이 27만 명을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중앙일보 1968. 10. 16). 이 해 11월에는 원장인 송윤규 박사는 새싹회가 수여하는 제12회 소파상을 수상했다.

그러다가 1971년에는 부산 아동자선병원은 기독교아동복리회(CCF)가 운영하던 ‘회복의원’과 병합되어 부산아동병원으로 개칭되었고 회복의원이 있던 부산시 서구 암남동 18번지로 이전하였다. 이곳이 바로 암남동 34번지의 송도 고려신학대학과 마주한 곳이었다. 이렇게 됨으로 아미동의 병원 건물은 국유재산관리법에 따라 부산대학병원에 양도되었다.

여기서 기독교아동 복리회의 회복의원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본래 1955년 서구 초장동에서 ‘결핵요양소’로 출발했는데, 1957년 7월에는 아미동 2가 126번지로 이전하였고, 1962년 9월에는 서구 암남동 18번지에 4천여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64년 2월 병원 건축을 시작하여 11월 5일 449평의 건물을 준공하고 1966년 부산아동회복의원으로 개칭했다. 아미동 부산대학병원 구내에 있던 부산아동자선병원은 바로 이 회복의원과 통합한 것이다. 1972년 5월에는 기존 회복의원 부지에 병원을 증축하여 총건평은 800평에 달했다. 이 병원은 여전히 자선병원이었고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아동들의 무료 치료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조원조달이 어려워 경영난에 직면하였고, 아동복리회의 지원 중단으로 재정난은 가중되었다. 1977년 1월에는 의료보호 2차병원으로 지정되고, 1979년 12월부터는 수련의 병원으로 지정되었으나 경영악화로 1992년 9월 30일 결국 폐쇄되고 말았다. 1980년대 이 병원에서 일했던 의사가 부평교회 박영식 장로였다. 그 동안 장기려 송윤규 김동수 박사가 이사장으로 일한 바 있다. 전란의 와중에서 육체의 아픔을 안고 고통당하던 아이들에게 의술을 베풀었던 부산아동자선병원은 40년 간의 사역을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람도 가고 병원 건물도 사라지고 아파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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