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 생각하면 노예 떠올라…내 꿈은 노동자가 아니에요”

임아영 기자

‘부모님은 노동자일까, 아닐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서울 삼양초 6학년5반의 ‘노동인권 수업’은 “노동은 어떤 것일까”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옮겨갔다. 배성호 담임교사는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육체노동’을 생각한다”며 질문을 던졌다. “교사는 노동자일까요”라는 물음에 강우진군(12)은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자유가 있는데 선생님은 교육부가 내린 지시사항을 따라야 하니 노동자예요”라고 답했다.

<b>아이들이 그린 ‘노동자 부모의 손’</b> 지난 25일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5반 학생들이 주말 자율 과제였던 ‘직접 그린 부모님 손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아이들이 그린 ‘노동자 부모의 손’ 지난 25일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5반 학생들이 주말 자율 과제였던 ‘직접 그린 부모님 손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최저임금? “처음 들어봤어요” “교과서에 없어요”

수업은 노동의 좀 더 세밀한 영역까지 밀고 들어갔다. 배 교사는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파업하는 배우들을 응원한다는 말을 공개 석상에서 하기도 합니다. 메이저리그에는 노동조합도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은 들어봤나요”라고 묻자 한 학생이 대답했다. “처음 들어봤어요. 교과서에도 없잖아요.” 들어봤다는 한 학생은 “TV 광고에서 봤어요. 6050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1만원은 받아야죠. 너무 적어요”라고 했다. 본인의 장래희망이 노동자인 것 같으냐고 묻자 학생 절반 이상은 “아닌 것 같다”는 답변에 손을 들었다. 이도현군(12)은 “게임하고 돈 버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배 교사는 “유럽에서는 의사와 청소부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아요. 사회마다 일하는 가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합니다. 2학기에는 더 넓은 세상,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독일, 프랑스 같은 다른 나라 친구들이 어떻게 노동에 대해 배우는지 이야기해줄게요”라며 수업을 마쳤다.

■노동은 강제, 괴롭고 싫은 것…63%가 부정적 인식

경향신문이 서울 성북·강북·송파 지역 3개 학교 5개 학급 110명의 초등학생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긍정적인 단어를 떠올린 학생은 12명(10.9%)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린 학생은 69명(62.7%)에 달했다.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떠오른 단어 1위는 ‘힘듦·힘든 일’(53명, 48.1%)이었다. ‘노예/천민’을 떠올린 학생도 7명(6.3%)이나 됐다. 그 밖에 ‘돈·월급’(11명), ‘공사장’(3명), ‘공장’(2명), ‘하기 싫다’(2명), ‘아프리카’(2명) 등의 답변이 나왔다. 비정규직에 대해 안다고 답변한 학생은 56명(50.9%), 최저임금에 대해 아는 학생은 51명(46.3%)으로 집계됐다. 노동조합에 대해 모르는 학생은 56명으로, 안다고 답한 학생(28명)의 2배(무응답 26명)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주관식 답변은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학생들은 “일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 노동은 강제로 하는 것” “자신의 직업을 즐겁게 하면 노동이 아닌 보람이고 자신의 직업을 괴롭고 싫다 생각하면 노동”이라고 적었다.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언제 퇴직할지 모르는 사람’ ‘회사 면접에서 합격한 것이 아니고 몇 개월 정도 일하고 나가는 사람’,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노동을 하고 받는 돈의 액수 중 가장 적게 줄 수 있는 것’ ‘알바를 할 때 돈을 조금 주고 일을 시키는 것’과 같은 답변이 나왔다.

배 교사는 “어린 학생들도 실제 삶과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현실을 접하며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하면 떠오르는 직업 1순위 ‘아파트 경비원’

초등학생들은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 1위로 아파트 경비원(81명), 2위로 마트 계산원(74명), 3위로 은행 직원(37명)을 골랐다. 이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중·고등학생 18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27일 발표한 ‘서울대교구 주일학교 청소년들의 노동인식 및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결과’와도 비슷하다. 중·고교생들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으로 아파트 경비원(1279명), 농부(1251명), 마트 계산원(1248명) 순으로 답했다. 중·고교생들이 희망하는 직업 1위는 교사였고 의사, 과학자 순이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희망 직종이 대체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이수정 노무사는 “‘청소년은 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칠 일이 아니다”라며 “청소년 알바, 비정규직 등 현재의 노동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관심을 기울이는 게 먼저이고 변화에 대한 관심은 노동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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