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션왕>시사회 참석한 설리.

영화 <패션왕>시사회 참석한 설리. ⓒ 이정민


[기사 수정 : 13일 오전 11시 33분]

"설리가 남자친구인 최자랑 침대에서 키스하는 사진을 자기 에스엔에스에 올렸다고 난리가 난 모양인데, 사람들 반응이 참 우리나라답고 너무나도 구리다."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이 11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지난 9일 전 f(x) 멤버 설리가 자신의 SNS에 올린 몇몇 사진들에 대해 쏟아진 일각의 반응들을 두고 한 한탄이다. 뭐가 얼마나 그렇게 구렸던 걸까. 먼저 표준어 '구리다'의 뜻을 살펴보자.

- 형용사 "구리다" [비슷한 말] 쿠리다
1. 똥이나 방귀 냄새와 같다.
2. 하는 짓이 더럽고 지저분하다.
3.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고 의심스럽다.

자, 그러니까 이 이석원이 한탄한 "구리다"의 층위는 세 가지를 가리킬 수 있다. 설리의 SNS에 벌떼처럼 달려든 '댓글러들'부터, 그 설리가 올린 사진으로 클릭 장사에 여념이 없던 다수 매체, 그리고 이러한 풍경이 2016년에도 별일 없이 가능한 한국사회까지. 설리와 설리의 SNS 사진을 둘러싼 풍경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여성 연예인에 대한, (어린) 여성의 성에 대한 이중적이고 전근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시선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대체 설리가 뭘 잘못했나

설리가 공개커플인 최자와의 애정 표현을 담은 사진을 두고 온갖 웃지 못할 반응들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는 비난은 물론이요, 훈계부터 충고, 읍소, 응원까지 자신의 관점을 투영한 말들이 실로 다채로웠다.

자신의 사진 한 장 한 장이 매체를 통해 기사화되면서 설리가 사진의 수위를 높이고 그 반응들을 즐기는 것처럼 보여왔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연애를 두고 "감 놔라 배 놔라" 댓글을 달고 그걸 기사로 중계하는 매체들에게 소위 '디스'를 가한 것이 이번 해프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설리는 연애든 키스든 그보다 더한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를 명확히 표현하고 주체적으로 세상의 시선에 맞서고 있다. 오히려 설리의 돌출행동이 지극히 유쾌한 것은 연예인, 그것도 여성 연예인이 일반적으로 벌이지 않았던 대응이라는 점에 있다.

아역탤런트 출신이요, 거대 기획사 소속이었던 이 1994년생 연예인의 SNS를 통한 자기표현은 가히 '할리우드'급이다. 이러한 당당함 앞에 남의 '연애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촌스럽고 온당치 못한 일이다. 더욱이 '여성 연예인'이라는 한국사회에서 불리한 자신의 위치를 충분히 자각한 상태에서 벌이는 소동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설리 앞에서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나 "연예인 생활은 끝났다"같은 촌평들은 따분하고 한심해 보인다.

음험한 시선의 주체는 누구인가

 설리 관련 <조선일보> 기사. 지금은 삭제된 상태다.

설리 관련 <조선일보> 기사. 지금은 삭제된 상태다. ⓒ 조선일보


문제는 매체들의 태도와 장삿속이다. 손쉬운 'SNS 지상 중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권장할 만한 자세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연해서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얘기다. 허나 성폭력에 가까운 헤드라인을 달고 어뷰징을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 기사를 노출하는 매체들은 답이 없다. 특히나 이번 설리 관련 기사들은 개인 연애사와 관련된 이슈이기에 그 선정성 정도가 최악의 수준이었다.

- 설리 연인 최자... "설리, 밤에 전화해서 0 해달라고 조른다" <조선일보>
- 설리, 최자를 만나는 이유? 그의 물건을 바라볼 때 '만족' <세계일보>
- 설리, 안경 쓰고 침대에 누워... '묘한 분위기' <채널A>

그중 몇 가지 사례들만 꼽아봐도 대략 이 정도다. 기자 바이라인도 없이 나가는 기사가 대부분이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이용해 기사를 노출했다가 문제가 되면 삭제하는 '치고 빠지기'식 공해 수준의 기사도 적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설리가 보란 듯이 SNS 계정에 사진을 올린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매체들을 조롱하기 위한 저의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이중, 삼중 잣대

위에서 언급한 이석원뿐 아니라 설리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한국사회의 후진성과 역주행을 지적하는 의견들은 적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시기, 경찰의 '소라넷' 서버 폐쇄와 회원 명단 확보 소식이 전해지면서 몰카 범죄와 사생활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소라넷 서버 폐쇄와 설리 SNS 논란은 여성의 성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와 음험한 시각,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소비하는 누군가를 가리키는 같은 듯 다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물론이요, 당당하게 연애할 권리마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여성 연예인(과 아이돌)의 일상이었다. 이들의 연애는 순결함으로 대변되는 판타지로서만 존재해왔다. 이런 금기는 호기심 마케팅의 목적으로 끊임없이 소비됐고, 그 소비의 정점엔 소속사와 매체, 팬덤의 공생관계가 자리했다.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를 탈퇴한 설리는 이러한 금기에 당당하게 균열을 내고 있다. 소속사와의 갈등이나 탈퇴 문제는 분명 다른 영역이다. 어찌 됐건, 설리가 어떤 선배들도 하지 못한 생산적인 일탈을 용감하게 감행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지겠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설리의 연애와 자기표현을 응원하는 이유다. 부디 그 사랑 오래오래 이뤄나가기를 바란다.

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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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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