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노동’

임아영 기자

“우리 부모님은 노동자일까요, 아닐까요?”

지난 25일 오전 10시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 5반 교실. 배성호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에게 물었다. “노동자가 아닌 것 같다”에 2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임아영양(12)은 “굳이 부정적인 표현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 숙제는 ‘부모님 손 그리기’(사진). 이도현군(12)은 엄마 손을 그린 뒤 이렇게 적었다. “손을 보면서 엄마가 살아온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집안일과 직장일 때문에 힘들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흉터와 굳은살’ 아빠 손 | ‘상처투성이’ 엄마 손 사진 크게보기

‘흉터와 굳은살’ 아빠 손 | ‘상처투성이’ 엄마 손

‘부모님 손’을 그려온 학생들은 한결같이 부모의 일(노동)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노동’ ‘노동자’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뜻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22명의 반 학생 중 노동이 긍정적인 뜻이라고 답한 학생은 3명뿐이었다. 경향신문이 서울의 초등학생 11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힘듦’을 떠올린 학생이 53명(48.1%)에 달했다. ‘노예/천민’을 떠올린 학생도 7명(6.3%)이나 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중·고등학생 18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27일 발표한 ‘서울대교구 주일학교 청소년들의 노동인식 및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1886년 5월1일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미국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파업에 나선 지 130년. 1890년부터 노동절은 세계적인 기념일이 됐지만, 아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노동’은 이렇듯 뒤틀려 있다. 이수정 노무사(청소년 노동인권네트워크)는 “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 보고 느낀 대로 생각하게 된다. 알바 체험을 하며, 비정규직 차별과 부모님의 긴 노동시간을 보며 ‘노동은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의 노동을 긍정할 수 있을까. 배 교사는 “노동을 입에 담는 것이 금기인 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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