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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군산의 역사인물 (내공 100)
비공개 조회수 4,235 작성일2011.08.15

안눙하세요 저는 군산에 사는 진포초 초딩인데요...

저희 학교에서 방학숙제로 4가지를 내주셨는데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해서요...군산의 인물을 고르려고 함니다.

군산의 역사 인물 3명 아님 2명 설명도 자세하게 부탇드립니다~^^

아차 글구 내공 100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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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ll****
태양신
한국사, 영어 독해, 읽기, 국가유산 4위 분야에서 활동

(군산을 빛낸 인물)

 

1.임병찬 (1851.2.5~1916.5.23)  
  
본관  평택 
호  돈헌 
별칭  자 중옥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전북 옥구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2) 
주요저서  《돈헌문집》  
 
본관 평택. 호 돈헌. 자 중옥. 전라북도 옥구출생. 1889년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이 되었다가 낙안군수 겸 순천진동첨절제사로 전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무남영우영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스승 최익현과 함께 의병을 모집, 200여 명을 인솔하고 담양으로 가던 도중 순창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체포되었다. 1906년 최익현과 함께 쓰시마섬에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돌아와, 1910년 왕의 특명으로 가선대부가 되고, 독립의군부 전라남도순무대장이 되어 항일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1914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전라남도 거문도에 유배되었으며, 1916년 단식 끝에 순국하였다. 저서에 《돈헌문집》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2.고봉민 (1862.2.26~1919.6.5)

 

자는 일서, 호는 송재.아버지는 고인시이다. 지금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옥정리에서 태어났다.

 

1914년 임병찬이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할 때에 논밭을 팔아서 군자금을 제공하였으며, 전북 순무영 경리관 겸 만경군 소모관으로 임명되어 모병 활동에 힘쓰기도 하였다. 그 후 3·1 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병이 나서 그 해에 죽으니 58살이었다. 광복이 된 후에 대통령 포장이 추서되었다.

 

3.전오풍 (1890.7.17~1947.10.15)

 

일제강점기 의병. 호는 사봉이고, 일명은 전세경·전대경이다. 본관은 담양이며,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수산리에서 태어났다.아버지 전영섭의 4남매 중 장자이다.

 

아버지 전영섭은 을사조약 체결 후 최익현·임병찬과 의병을 일으킬 것을 도모하다가 병이 들었다. 그러자 전오풍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격문을 돌리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전투에 참여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상중으로 부득이하게 후방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후 최익현과 임병찬이 대마도에서 돌아오자 집안 재산을 군자금으로 헌납하고 수백명의 동지들과 함께 임병찬의 막하로 들어가 참모로 활동하였다.

 

1914년 임병찬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거문도로 유배되고 1916년 단식으로 순절하자 지하로 숨어들어 남몰래 독립운동을 하였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군산과 옥구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7년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4.채만식 (1902.6.17~1950.6.11) 
 
본관  평강 
호  백릉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전북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31번지 
주요저서  《레디 메이드 인생》(1934),《탁류》  
 
본관 평강. 호 백릉.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3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중퇴, 귀국 후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자를 역임, 1925년 단편 《세 길로》가 《조선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 후 희곡 《사라지는 그림자》, 단편 《화물자동차》·《부촌》 등 동반작가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으나 1934년에 《레디 메이드 인생》·《인텔리와 빈대떡》 등 풍자적인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적인 기반을 굳혔다. 그 뒤 단편 《치숙》·《소망》·《예수나 믿었더면》·《지배자의 무덤》 등 풍자성이 짙은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

 

장편 《탁류》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사건을 놓고 사회의 비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1973년에는 유고로 중편 《과도기》와 희곡 《가죽버선》이 발견되어 《문학사상》지에 발표되었다. 저서로 《채만식단편집》·《탁류》·《태평천하》·《집》(단편집) 등이 있고, 8·15광복 후에는 《여자의 일생》·《황금광시대》·《잘난 사람들》 등을 남겼다.

 

5.고은 (1933.4.10~)
 
본명 고은태
출생지 전라북도 군산
데뷔 1958.시 「폐결핵」이 현대시에 추천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


본명은 은태, 법명은 일초. 1933년 4월 10일 전북 군산 출생. 군산중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한국전쟁을 맞아 휴학했다.

 

1952년 입산하여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여 년 동안 수선과 방랑생활을 하다가 1962년 환속했다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장, 민주회복국민회의 중앙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시 「폐결핵」이 『현대시』에 추천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한 이래 『피안감성』(1960), 『해변의 운문집』(1964), 『신 언어의 마을』(1967)을 위시하여 많은 시집을 발간하였다. 그의 초기 시들은 허무의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생에 대한 절망을 노래하면서 허무의 정서에 젖어 있는 시적 자아의 형상에는 삶에 대한 의지나 집착보다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심미적 탐닉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의 시적 언어는 지나치게 탐미적이고 감상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불안정한 정서의 편린을 표출하고 있다. 그의 시 세계는 1970년대 중반에 발간된 『문의마을에 가서』(1974), 『입산』(1977), 『새벽길』(1978) 등을 통해서 변모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시적 자아는 자기 혐오나 허무감을 떨쳐버리고 역사와 현실 앞에 자기를 세우기 시작한다.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과 민중 중심의 역사관에 바탕을 둔 이러한 자기 인식을 통해 시인은 정의롭지 못한 현재에 대한 격렬한 투쟁의지를 노래한다. 대표작인 「화살」에서 잘 나타나듯이 투철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자기희생의 비극성과 전투성이 이 시기 시의 주조를 이룬다. 고은의 이러한 시적 변모는 이전의 시에서 볼 수 있었던 삶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생의 무상함에 대한 인식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1980년을 경험한 후 그의 시 세계는 다시 한 번 변모한다.

 

이 시기에는 연작시 「만인보」와 장시 「백두산」이 창작되었는데, 이들은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다면성을 그려내려는 시도라고 보여진다. 특히 연작시 「만인보」는 그 규모의 방대함과 시적 상상력의 포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민족의 삶의 모습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다채롭게 엮어가고 있는 이 시의 독특성은 반복과 중첩의 묘미에서 찾을 수 있다. 「백두산」이 역사에 대한 신념을 서사적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면, 「만인보」는 민족의 삶과 그 진실을 서정의 언어로 통합시켜 놓은 훨씬 폭 넓고 깊은 역사의식을 포괄한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201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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