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D-51’

“대포와 소총의 대결…‘정치혐오 산맥’ 넘는 게 가장 어렵다”

정환보·정제혁·조미덥 기자

정치 신인들 ‘고군분투’

“명함을 드렸더니 자기 주머니에 있는 쓰레기를 꺼내 주더라.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말밖에 할 게 없더라.”(더불어민주당 황희 예비후보, 서울 양천갑)

“정치혐오가 극대화돼 있는데 오히려 불똥은 신인들한테 튄다. ‘뽑아줘도 다 똑같다’는 식이다. 분위기 싸해서 명함 돌리기도 힘들다.”(새누리당 이윤생 예비후보, 경기 김포)

20대 총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는 아직도 선거구를 획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1년4개월 전 다시 정하라고 한 선거구를 여야가 차일피일 미루며 짬짜미하는 동안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은 극대화됐다. 유권자들 마음속 ‘정치불신의 벽’은 더 높아졌다. 정치 신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구동성으로 “기성 정치인들이 쌓아 놓은 정치혐오 산맥을 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한다.

<b>‘투표함 관리 강화’ 홀로그램 스티커 첫 도입</b> 20대 총선을 52일 앞둔 21일 경기 수원시 영통동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투표함에 ‘관리번호 홀로그램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 이 스티커는 투표함 안전성 강화를 위해 전국단위 선거에서 처음 사용된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투표함 관리 강화’ 홀로그램 스티커 첫 도입 20대 총선을 52일 앞둔 21일 경기 수원시 영통동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투표함에 ‘관리번호 홀로그램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 이 스티커는 투표함 안전성 강화를 위해 전국단위 선거에서 처음 사용된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출제범위도 모르는 ‘깜깜이’ 시험

기득권이란 공고한 담벼락과 유권자 냉대 속에 정치 신인들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듯 선거판을 헤매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선거구 변경 예상 지역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이다. 새누리당 이치우 예비후보는 부산 해운대·기장갑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본인의 근거지는 ‘해운대구 좌동’으로 현행 ‘해운대·기장을 선거구’에 속하지만 구획 변경을 예상하고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지역구는 갑·을이 바뀔 수 있어도,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의 ‘갑을 관계’는 변함이 없다. 이 후보는 궁여지책으로 승합차 안에 선거운동본부를 차려 ‘무빙오피스(이동형 선거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홍보 손팻말 테두리에 LED(발광다이오드) 전구를 달아 깜박이게 하는 등 아이디어를 짜내 돌파구를 찾는 실정이다.

전남 고흥·보성에 등록한 국민의당 김철근 예비후보도 불확실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는 “수험생한테 시험 범위도 안 정해주고 날짜만 알려주고는 알아서 준비하라는 꼴”이라고 말했다. “현역 의원들은 통합·분구 예상 지역을 암암리에 커버하고 있고, 당내 경선도 조직·자금·인지도에서 우위에 있다”는데 정작 본인은 “명함 배부 이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담합’

선거구 유지가 확실시되는 지역도 피해자는 도전자인 신인들이다. “선거구 소멸 상황에서 치러진 당내 경선은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유권해석에 따라 각 당이 계획한 경선 일정이 줄줄이 미뤄지고 있다. 새누리당 최형두 예비후보(경기 의왕·과천)는 “야당 현역 의원은 진작부터 본선 여야 대결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신인들은 당 안에서 마쳤어야 할 절차마저 아직 진행이 안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답답한 마음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냉소적 반응만 느껴질 뿐이다.

새누리당 김성원 예비후보(경기 양주·동두천)는 정월대보름맞이 척사(윷놀이)대회를 하루에 열다섯개까지 뛰고 있다. 거기서 얻어 먹는 떡으로 끼니도 때웠다. 현역 의원들이 맞을 매를 대신 맞는 일도 숱하다. 더민주 강병원 예비후보(서울 은평을)는 “70대 할머니가 호통을 치시더라. ‘배추같이 껴안아서 한 포기가 돼야지, 정치인들은 상추같이 옆으로 퍼지기만 하느냐’라고. 발버둥 쳐도 설득 안되니 더 힘들다”고 털어놨다.

[4·13 총선 ‘D-51’] “대포와 소총의 대결…‘정치혐오 산맥’ 넘는 게 가장 어렵다”

■우려되는 ‘헬총선’

제도적 차별도 신인에겐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높은 벽)’이다. 국회의원은 선거 90일 전까지 의정보고회를 개최하고 의정보고서를 전 가구에 발송할 수 있다. 하지만 예비후보는 전 가구의 10% 이내에만 홍보물을 발송할 수 있다. “대포와 소총의 싸움”(국민의당 김명진·광주 남구)이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에 지하철 출구 안으로 두 계단 내려갔다 선관위에 적발된 예비후보도 있다.

‘정보의 비대칭’도 난관이다. 청와대 홍보수석까지 지낸 새누리당 김두우 예비후보(대구 북을)도 “현역은 금수저 당원명부, 신인은 흙수저 명부”라고 지적했다.

당내 경선인데 의원이나 당협·지역위원장은 당원 정보를 다 알지만, 신인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추정할 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자 여야의 적대적 공생관계”(더민주 김영진·경기 수원병)라고 원망하면서도 그들은 실낱 같은 희망을 건다. “뺨이 찢어질 것같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도 털모자와 귀마개는 절대 안 쓴다. 덜덜 떨어야 그나마 눈길이라도 줄 것 아닌가”라는 한 예비후보의 하소연이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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