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원인이 ‘과소비 탓’? 친기업·반노동 가르친 교과서

박용필 기자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외환위기)로 우리 국민들은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났으며, 많은 아버지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비정규직이 양산된 것도 이때부터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것도 이 시기부터이며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구직난에 허덕이는 현재의 20~30대들은 외환위기가 무엇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을까? 적어도 초등학교 시절엔 ‘국민들의 과소비’ 때문이라고 이들은 배웠다.

2004년까지 사용된 초등 5-2 사회과 탐구 교과서 22쪽에는 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한 주부의 인터뷰가 나온다. “과소비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고…”, “유명 상표의 옷만 샀고 외국 제품을 많이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교사용 지도서는 ‘경제적 시련을 겪은 까닭’이 ‘국민들의 과소비’ 때문이라고 가르치도록 안내하고 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무분별한 기업 대출’ 같은 원인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장롱 속 돌반지까지 모아가며 사태를 해결한 주역이자 피해자인 국민이 졸지에 경제위기의 원흉이 된 것이다.

해당 내용은 지금 쓰이는 교과서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현행 교과서에도 노동자의 입장보다는 기업 중심의 서술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최저임금제에 대한 서술이 대표적이다. ㄱ출판사의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131쪽에서는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정부의 최저임금제가 오히려 일자리만 감소시키는 경우, ~의 경우는 정부 실패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돼 있고, ㄴ출판사 경제 교과서도 비슷한 이유로 최저가격제의 부작용의 예로 최저임금제를 들었다.

ㄷ출판사는 236쪽에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실업 대책은 정부가 기업을 운영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라며 기업 입장에서 아전인수격 서술을 하고 있다.

신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장은 “노동교육을 제대로 해야 할 경제나 사회 과목에서 오히려 노동 관련 내용이 친기업·반노동자적 시각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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