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조준모]청년수당 갈등에 청년이 볼모로 잡혀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표 청년수당정책이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사마리아인의 딜레마’에 비유할 수 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 기득권층인 제사장은 그냥 지나쳤지만 천한 사마리아인은 도리어 강도 피해자를 보살펴준다는 성경 내용이다. 그러나 후속 이야기는 반전이다.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난 사람을 아무리 도와줘도 강도와 피해자는 도리어 늘고 사마리아인의 재정은 한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이 아닌 국가가 치안을 강화해 강도를 줄이고 피해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다. 여기서 서울시는 선한 사마리인이고 국가는 중앙정부에 비유될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는 현금 지원 복지제도를 사마리아인의 딜레마에 비유한다. 현금복지는 달콤한 옵션이지만 스스로 노력하려는 개인의 의지를 상실케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비용이 크다. 따라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금수당을 지양하고 근로능력자에게 교육, 훈련, 구직활동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 프로그램 참여를 조건으로 소득을 지원하는 상호의무 원칙을 권고한다. 과거 유럽의 많은 국가는 청년 실업자에게 현금 위주의 복지 정책을 폈지만 이들의 구직 의욕을 떨어뜨리고 실업률을 높였다. 이에 따라 유럽의 현금복지도 재조정됐다.

반면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봉사, 영어학원 수강, 공무원시험 준비 등 취업 창업과 무관한 개인 활동까지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현금을 지급할수록 복지 대상자가 늘어나는 사마리아인의 딜레마를 재생산할 가능성이 크다.

왜 이런 정책이 만들어졌을까. 많은 경제학자는 위임 민주주의하에서 정치인의 대중영합주의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서울시 청년수당도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 국민의 위임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중앙정부 정책과의 조율 절차를 무시한 채 전격 작전처럼 시행됐다.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에 청년들이 볼모가 됐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서울시와 중앙정부는 서로 소통하여 효율적인 정책 설계를 위해 협치해야 한다.

서울시 청년수당처럼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제도를 신설하기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하는 고용복지체제 재설계를 협의해야 한다. 예컨대 근로자와 사용자가 낸 돈으로 운영하는 고용보험제도도 일본이나 캐나다처럼 일반회계와 지자체 예산을 더해 사업별로 유연하게 추진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또 중앙정부 정책에 대한 낮은 신뢰도 지자체장들의 대중영합주의가 발생한 원인 중 하나임을 자각해야 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박원순#청년수당#고용복지체제 재설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