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8·15 경축사

‘한강의 기적’ 꺼내 ‘헬조선’ 역공, 청년세대에 ‘자긍심’ 강요

이용욱 기자
<b>만세삼창</b>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대통령 오른쪽) 등 참석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만세삼창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대통령 오른쪽) 등 참석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내 문제를 주로 언급했다. 한·일관계 및 대북 메시지 등 이전 세 차례 경축사에서 주안점을 뒀던 외교안보 비중은 과거보다 훨씬 작았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이날 200자 원고지 53장, 6500자 분량의 경축사를 읽는 동안 한·일관계를 직접 언급한 것은 단 한 문장뿐이었다.

■‘청년의 좌절’ 외면

박근혜 대통령은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직격했다. 신조어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양극화·청년실업·비정규직 등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할 때 나오는 ‘헬조선’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불신과 불타협,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들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일도 가중돼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대한민국 발전 원동력이었던 도전과 진취, 긍정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도 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해 위기를 이겨 나가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헬조선’을 비판한 반대편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 유산인 ‘한강의 기적’을 다시 꺼냈다.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미래를 확신하면서 세계가 말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 왔다”고 강조한 것이다. 한류, 국가신용등급 상향 등을 거론하면서 “대한민국의 저력이자 자랑스러운 현주소”라고 말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어려운 현실과 청년 세대의 좌절은 외면하고 오히려 나무라며 무조건적 자긍심만 강요한 셈이다. 패배감에 휩싸인 자식 세대가 아버지 세대가 일궈낸 한강의 기적을 잇지 못한다고 비판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사드 배치 갈등 - 외교·경제 손실 우려를 “피해의식” 일축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가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한 ‘자위권적 조치’라고 주장하면서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특히 박 대통령은 “우리의 운명이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피해의식과 비관적 사고를 떨쳐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사드 배치로 빚어질 수 있는 외교·안보·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를 ‘피해의식’이라고 일축했다. 또 “만약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있다면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사드가 국민 보호를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박 대통령 언급은 안보 문제에 대해 이견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독선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사드 배치 결정으로 중국이 대북제재 공조 대열에서 이탈하고 한·미·일과 중·러의 대결국면이 심화된 상황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 발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재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재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일 관계 - 위안부엔 침묵…“미래 보는 게 시대정신”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이 아예 빠졌다.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 간 전격적인 합의 이후 위안부 문제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음에도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박 대통령은 “한·일관계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는 한 문장(文章)을 말했다.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반발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논란이 심화되는 것을 회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양국 간 ‘미래’를 강조한 것은 한·일관계에서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를 종결하고 이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자는 뜻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 말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창의적 사고”라고 언급하면서 이를 “시대정신”이라고까지 했다.

박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언급 없이 ‘미래’를 말한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일본 종전일(패전일) 희생자 추도식에서 일본의 가해와 책임에 대한 언급 없이 “희망에 찬 국가의 미래를 개척해 가겠다”고 말했다.

■대북 메시지 - ‘대화’ 언급 없이 “북한 주민들 나서달라”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당국의 간부들과 모든 북한 주민”을 호명하며 “핵과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는 새로운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데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통일은 여러분 모두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각자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을 추구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등 권력집단과 당 간부·주민을 분리해서 접근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국과 간부의 경계가 모호하고, 당국과 주민에 대한 분리 대응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선언에 그칠 것이란 지적도 많다.

결국 정부의 통일론이 적극적 대북정책에 기반하지 않고 북한의 체제 불안과 천수답식 ‘북한 붕괴론’에 기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과 대남 도발 위협 중단을 촉구했다. ‘대화’는 단 한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압박과 제재를 밀어붙여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강경 대북정책을 고수할 뜻을 재확인해줬다.

■노동개혁 - “모두가 기득권 놓자”며 결국 노조 겨냥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동체 정신’과 ‘기득권 내려놓기’를 강조했다. 이 같은 언급은 주요 국정과제인 ‘노동개혁’으로 귀결됐다. 경제 재도약도 결국 ‘노동개혁’으로 수렴됐다.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국가 생존 과제”라며 “모두가 ‘남 탓’을 하며 기득권만 지키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가 공멸의 나락으로 함께 떨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은 ‘기득권 지키기’ 탓이라는 인식을 보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기득권을 조금씩 내려놓자”고 호소했다. 구체적으로 “기업주들은 일자리를 지키는 데 보다 힘을 쏟아달라”고 한 반면, “대기업 노조를 비롯해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은 근로자들은 청년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위해 한 걸음 양보하는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공동체’ ‘기득권 내려놓기’ 주문이 대기업 노조들을 겨냥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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