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법, 더민주의 착각과 외면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지난 20일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44일 만에 당무에 복귀해 첫 발언으로 “삼성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샤오미는 중국에서 지원을 받는데 밖에 적이 있으면 안에서 (삼성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그 논거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원샷법을 양보해 버렸다. 작년 말 공청회 직후에 산업부가 사소한 내용 몇 가지를 고친 상태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백기를 들어버린 것이다. 재벌 대기업을 적어도 일부라도 배제해야 한다던 주장은 어디론가 슬그머니 감춰 버렸다. 그렇다고 기업지배구조 선진화에 관한 상법 개정안 등 관련 분야의 개혁 입법을 관철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두 달 동안 밀고 당기기를 했다는 말인가.

[경제와 세상]원샷법, 더민주의 착각과 외면

산자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5일에 있었던 산자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의 반대 논거를 뒤집는 데 별다른 고뇌를 보이지 않았다. 대기업을 포함시키기로 했다면 그에 따르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 독소조항이라도 보완해야 한다는 정의당 김제남 의원의 주장은 사실상 버림받았다. “사업재편은 노동자를 고려해 착하게 추진하라”는 강제성 없는 내용을 조금 집어넣고서. 결국 정부가 당초 의도했던 두 가지 목적, 즉 ‘재벌대기업에도 적용’하고, ‘소규모 합병 등 주주총회 무력화 관철’ 등은 완벽하게 살아남았다.

이번 원샷법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물론 누구나 원샷법의 내용이나 중요성에 대해 필자와 다른 평가를 가질 수 있다. 필자는 더불어민주당이 필자와 생각이 달랐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법안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건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태도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원샷법이 좋은 법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자. 그럼 진작에 통과시켜 주었어야 했다. 무엇 때문에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법을 두 달이나 틀어쥐고 있었는가. 그런 일은 반대를 통해 무언가 부당한 이득을 챙기려 했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다음으로 원샷법이 나쁜 법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공청회 직후의 수정안에서 아무런 변화도 없는 법안을 두 달 만에 갑자기 찬성해 준 행태가 말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원샷법은 좋은 법도, 나쁜 법도 아닌 그저 그런 법이었는데, 그냥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한 경우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도 필자는 다음과 같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인기 좀 올라갔습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혹자는 더불어민주당과 이종걸 원내대표가 이처럼 방향을 선회한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했다. 하나는 대통령과 재계가 1000만 서명을 하면서 ‘식물국회’를 규탄하고 이것이 ‘야당심판론’으로 발전할까봐 걱정되어서라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새로 만들어질 국민의당이 이미 원샷법 찬성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에 홀로 반대하기가 부담스러웠으리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1000만 서명에 대한 대응은 이런 움직임 자체가 부당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지, 이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재미 좀 본” 재계와 여권이 앞으로 또다시 이런 “유효한 방법”을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야당심판론 역시 마찬가지다. 야당은 자신이 표방하고 지지했던 원칙과 정책성과로 심판받는 것이지,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해가면서 여당에 협조한 실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삼성을 돕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표방했던 원칙을 굽히면서까지 도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삼성을 제대로 돕는 일도 아니다.

아직 교섭단체도 만들지 못하고, 1000만 서명을 주도하는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하루 만에 엇갈리고, 경제민주화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도 내지 않은 국민의당 때문에 태도를 바꾸었다는 말은 그것 자체가 웃음거리다.

어제 더불어민주당은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켰다. 사령탑은 경제민주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겸직했다. 그러나 필자는 김종인 체제의 첫 작품이 29일 본회의에서의 원샷법 찬성이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주식매수청구권을 박탈하고, 주주총회 소집 공고 기간을 축소하고 주주총회 개최 자체를 건너뛰는 법안에 찬성하고서, 도대체 어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것인가. 정녕 선거에서의 승리는 이런 고리타분한 원칙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