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정부·여당이 한통속 돼 주권자 모욕할 텐가

손발이 착착 맞는다. 여당이 무릎 꿇고 읍소하자, 대통령은 격전지에 찾아가고, 정부는 ‘북풍몰이’에 나선다. 읍소 전략이 먹히는 듯하자 ‘공포 마케팅’으로 시민을 겁박한다. 선거법이나 정치적 도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뻔뻔하고 무서운 정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일 충북 청주와 전북 전주를 찾았다. 두 곳 모두 4·13 총선에서 접전 중인 지역이다. 새누리당 상징색인 빨간색 옷을 입은 박 대통령은 “이번에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20대 국회는 확 변모되는 국회가 되기를 기원하겠다”고 말했다. 선거 전부터 되풀이해 온 ‘국회 심판론’ ‘야당 심판론’과 같은 맥락이다. 공직자는 선거기간 중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 하물며 공직자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는 재론할 필요도 없다. 박 대통령의 노골적 선거개입은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행위다.

박 대통령이 지역 방문을 강행한 날, 통일부는 해외의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는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출해 입국했다고 발표했다. 통일부는 금요일 오후 5시에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었다. 정부가 언론 보도 전 탈북 사례를 공식 발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동안 정부는 관련 국가와의 외교적 마찰이나 북한 내 가족의 안전 등을 이유로 탈북자 입국 사실을 공개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이번 사례는 누가 봐도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북풍몰이’의 흔적이 짙다. 통일부가 민족의 명운이 걸린 남북관계를 볼모로 잡아 ‘여당 서포터스’로 나선 격이다.

한동안 낮은 자세를 유지하던 새누리당도 선거일이 임박하자 협박조로 돌아섰다. 김무성 대표는 9일 “(새누리당 입장에서 총선 결과가) 잘못되면 안보의 장벽은 무너지고 경제가 어려워진다. 외환위기보다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야당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독약이 많이 든 설탕이다. 이것 먹으면 대한민국이 죽는다”고 말했다. 대구 지역 후보들이 “미워도 다시 한번 회초리를 들어달라”고 읍소한 지 사흘 만의 일이다. 새누리당의 태도가 돌변한 배경은 짐작할 만하다. “135석으로 쪼그라들 수도 있다”(4일 권성동 선대위 전략본부장)던 판세 전망이 “145석 전후”(10일 안형환 선대위 대변인)로 변했기 때문일 터다. 주권자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면, 단 며칠 사이 저렇게 말을 바꿀 수 있나. 읍소 전략이 진정성 없는 ‘쇼’였음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이미 최악의 공천으로 시민들에게 깊은 모욕감을 안겨줬다. 선거와 유권자를 모독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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